화산 용주사 / 전강대종사 (선종 제77대 법맥)
花山 용주사 (효의도량)
신라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서 병자호란때 소실된것을
조선시대 22대 임금 정조대왕께서 부친 사도세자(장조로 추론,혜경궁홍씨는 현경왕후로)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능침사찰로 지어진 절로써
상량식때 부친이 용이되어 승천하는 꿈을 꾸고나서 "용주사(龍珠寺)라 이름 지었다한다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아미타부처님(좌)과 약사여래부처님(우)을 모시고있다
그리고 벽면엔 서양의 음양기법으로 그려졌다는 화려한 후불탱화가 있다
좌측의 범종각(국보 제120호 :고려초기)은 워낙 꽁꽁 싸매놔서 눈으로만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대웅보전앞의 회양목은 천연기념물264호 1970년에 정조가 대웅전을 직접세울때 심은것이란다
아쉽게도 200년 세월에 명을 다하여 밑둥가지만 남은상태이다
용마루의 까치 두마리가 봄을 알리느라 이리날고 저리날고 ...
"천불전"엔 가운데 석가모니처님을 중심으로 비로자나불(좌), 아미타부처님(우)에 모셔져있다
그리고 옥으로 된 千佛이 모셔져있다
대웅보전에선 어느 영가님의 천도제가 있는것 같아
이곳에서 108배를 하는데 ...
"많은걸 내려놓고 가리라"
그러고 보니 비워야할 게 많았다
"시방(十方)칠등각" (현판이 독특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삼성각으로 불화앞에 자그만 석불도 모셔져있다)
동 서 남 북 동북 동남 서남 서북 그리고 상 하
칠등=칠성 즉 칠성각(삼성각)으로 무수한 부처님세계를 의미한단다
"호성전"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와 부친사도세자(장조)와 혜경궁(현경왕후)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탑에는 "부모은중경"이 새겨져있다
옛날엔 하루 6번의 재를 올렸다한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우측에는 법고각 좌측에는 범종각
"전강 영신(법명) 대종사"의 사리탑!
경허- 만공- 전강-송담 북"송담"이 있으면 또한 북"전강"이 있으면
경허- 혜월- 운봉- 향곡-진제 남"진제"가 있단다 남"성철"이 있단다
23세되던 1921년에 크게 깨달은후 오도송을 남겼으며
1923년 금강산 지장암 한암스님을 찾아가자 한암스님이 묻기를
"육조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불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읍니다
그러자 스님은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계속해서 용성(龍城)·혜월(慧月)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스님은 만공(滿空)스님을 찾아갔다가
더욱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스님은 처음에 만공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했다가 재발심을 하고 다시 정진하였으며,
마침내는 전법게(傳法偈)를 전수받으면서 "선종 제 77대의 법맥"을 계승하게 됩니다.
스님은 이후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15여년에 걸쳐 후학 지도에 전념하였습니다.
1969년 "용주사에 중앙선원"을 개설하여 선풍진작에 크게 공헌하였읍니다
이러한 스님의 선풍은 용주사에서 "송담스님"에 의해 계승되고 있답니다
1974년 지리산 정각사 조실스님을 역임한 스님은 1975년1월13일 앉은채로 입적하였다
전강스님 오도송(悟道頌)
昨夜月滿樓(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이 누각에 가득하더니
만공스님 전법게(傳法偈)
示 田岡永信(시 전강영신) 佛祖未曾傳(불조미증전) 부처와 조사도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고
鏡虛門人 滿空(경허문인 만공) --- 더 자세한 글들은 용주사 홈페이지에서 보세요 _()__()_ 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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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대종사께서 세운 "중앙선원"
많은 스님들의 배움의 길이 끊이지 않고 있단다
이날도 소나무 숲사이로 포행을 하거나 운동하시는 스님들이 여럿 계셨다
지장전 (명부전) 내부
효행교육관(템플스테이 교육실)
"만수리실" (종무소 겸 ??)
여느절과 다르게
안에서 보았을땐 "홍제루" 밖에선 "천보루"로 양쪽으로 길게 회랑으로 연결 되어있으며
양쪽으로 날개를 달은듯 좌측으로는 "만수리실" 우측으로는 "나유타실" 로
일반양반가의 건물처럼 툇마루도 있다
잠시 툇마루에 걸터앉아 (사진의 두분이 앉았던 자리에)
늦은 점심으로, 구정때 싸주셨던 곳감(부모님이 직접깎아서 말리신것)두개를 손에 들고
오늘 여기에 오게된 연유(조카가 1년을 함께 지내다 제자리를 찾아 옮겨갔다)와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정조대왕의 애틋한 마음들이
가슴을 짠하게 했다
우측으로 나유타실 ! 가려져있어서 현판만보인다
천보루와 오층석탑이 참 잘 어울린다
천보루 아래에 불교용품점으로 "봉향각"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길이기도 하다
천보루에 연결된 회랑
"삼문"
말그대로 문이 세개라서 삼문이란다
이 역시 양반가의 건축양식이란다
안에서 본 모습으로 양쪽으로 방이 준비되어
지금은 "템플스테이" 하시는 분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쓰고있단다
마당한쪽에는 느티나무 고목이 경내를 지키고 있다
"감로수"
일주문인 삼문
양쪽으로 세워진 "석조 해태상" 간결하고 굵게 처리된 조각기법으로 혜학적이고 익살스럽다
해태상은 "화마"를 물리친다는 의미란다
네기둥 주련에 쓰여있는 글은 "죽농 안순환"의 글씨란다
첫 네글자 "용 주 사 불"로 시작한 한시가
"용이 꽃구름속에 서려있다가 여의주를 얻어 조화를 부리더니
절문에 이르러 선을 본 받아 부처님 아래에 중생을 제도한다"
낙성식 전날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꾼후 "용주사"로 했다는 것과
상통하는 글이란다
저건너엔 효행박물관 건물이 보이고
길게 늘어진 저녁 그림자가 경내를 평온하게 만든다
"경의를 표시하는 곳" 이라는 의미의 "홍살문"
4~5전에 왔었을때엔 없었던것 같다
사천왕문에서 일주문(삼문)까지 들어오는 길 양쪽으로
많은 부처님처럼 서있는 돌들에는 좋은 글들이 새겨져있다
정조대왕의 효심을 살려서 "효행박물관"이라 지었단다
정조대왕의 효심은 물론 많은 보물들과
박물관에서 포교사의 자세한 설명으로 "전강선사의 선맥과 행적"을 들을 수 있어서
한결 기뻤다
또한 인천의 "용화사"에서 수행정진하셨기에 그곳에서 선사에 대한 자료를
구할 수 있다 했다 (다음 순례지가 그곳이 될듯싶다)
머지않아 겨울옷도 벗을때가 된 듯싶다
사천왕님은 인사만 잘해도 그냥 들여보내 주시지만 박물관이 있어서 입장료 1500원내야 들어갈 수가 있다
수원 花山(겹겹의 꽃잎으로 둘러있는 모양의 산세) 용주사 !
대한불교 제2교구 관음사찰3호인 효행을 가르치는 사찰 !
"국자가 국맛을 모른다"
오늘따라 이말이 이렇게 실감나게 다가올 줄이야
불과 4~5년전만 하여도 佛 가 뭔지도 몰랐다
용주사엮시 친구와 함께 템플스테이 단체복을 주문받으러 왔던 기억이난다
그땐 많은 불사중이어서 어수선하고
절같지 않은(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약간은 현대에 가까운 그런 인상을 받았었다
까막눈(20대등산광 ??) 경력으로 결코 눈에익지 않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역시 오늘 출발할때 "혹시 가본곳이 아닐까" 하면서 또 실망스러우면 어쩔가 싶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안정적이고 또한 알고보니 모든게 정감이 가는것이 절로 고개도
끄덕여지고 또오고 싶어지도록 잘 가꾸어졌다
또한 지금은 템플스테이도 진행이 되고,
4월(융능:사도세자),5월(건릉:정조)의 큰행사(제향)가 있을때마다 연례행사로
수원시와 함께 대대적으로 치루어지며
효행원찰로서 보기좋았다
그리고 큰스님과 임금님까지 모시고 있어서 가족과 함께와도 좋을듯 싶다
능입구에 지어진 재실
2010년 2월 21일 다녀오다
융,건능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으며
용주사에서 시내버스로 한정거장 거리에 융능과 건능이 있다
입장시간은 오후 4시30분까지 이며 입장료는 1,000원이다
오후 5시30분까지 오픈(계절따라 연장)
조금늦은 도착으로 입장 못할 것을 사정해서 둘러보고 나오니
경비하시는 분이 귀뜸을 해주신다
4월 둘째주일요일엔 융능제사는 서울시가 주체가되고
5월엔 건능제사인데 수원시가 주체를 하다보니 훨씬 성대해 치루어지니 5월둘째주에 또 오라신다
다음엔 화성(팔달문)까지 가보면 더 좋을듯싶다
또한 전강대종사님께서 계셨던 "망월사"가 집가까이 있기도 하거니와 2년전에 그 앞을 지나다니며
여의치 않아 늘 궁금했었는데 역시 마음이 가는 곳이었던것 같다
인천(주안역뒤) "용화사(용화선원)"에 선맥을 찾아 조만간에 가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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