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울주 천전리 "각석(刻石)"과 반구대의 "암각화(巖刻畵)"

강보 (gangbo) 2014. 5. 9. 01:19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있는 "대곡천"이랍니다

 

여느 천변과 다를게 없어 보이는데 무슨말을 하려고 이리 장황하게 시작을 할까요^^

 

 

 

 

 

대곡천을 건너 천변으로 산길을 따라

"문화 해설사"님을 모시고 설명을 들으며 따라 갔읍니다

 

 

 

 

 

이 바위가 예사 바위가 아니었읍니다

"국보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는 "울주 천전리 각석" 이랍니다

 

각석이란?

돌에 그림이나 글을 새긴것으로

"천전리 각석"은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추상적인 도형

그림은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비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으로 해석이 되고,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글이나 그림들은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이용하여 새긴 세선화로

말을 끌거나 타고있는 일물상, 돛을 단 배, 말 등이 행렬을 이루고 있으며, 용 그림 등도 그려져 있다

 

그 일부분은 글도 새겨져 있는데 6세기 초의 기록으로 추정되는데

내용인즉,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갈문왕"이 을사년(525년)6월18일 새벽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과,

사부지갈문왕 부인 "지몰시혜"가 남편이 죽자 그리움에 사무쳐 그의 흔적이 남은 천전리 계곡으로

어린 아들(후에 진흥왕)과 함께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천전리 각석은 선사시대뿐만 아니라 고대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적이다

 

 

                                                                    이 글은 그곳에 준비되어 있는 '리풀렛'의 내용들을 간략히 옮겨 보았읍니다

 

 

 

 

 

위글중 신라시대의 명문은 바위가 떨어져 나간 오른쪽 부분에

한문으로 글이 새겨져 있는걸 지금도 확인할 수가 있었고,

 

해설사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천년전에 써놓은 글"을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음이 감회가 깊었읍니다

 

 

 

 

 

 

 

자세하게 볼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구요

 

 

 

 

실제로 육안으로도 보이는 부분도 있고

그동안 마모가 되어 바위조각이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었읍니다

 

이왕 손이 닿지 않도록 경계선을 치고 보호를 할 양이면

손실을 막는 방법도 강구했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읍니다

 

저리두면 얼마나 오래 보존이 될런지

풍화에는 강한 바위라고 하지만 안타까웠읍니다

 

 

 

 

 

 

각석이 있는 건너편 바위로 저곳에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다

 

문화 해설사님의 해설에 의하면

대곡천변이 공룡 서식지였거나 이 일대가 눞지대로 공룡 휴식처로 있다가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모두 사라지고 발자국만이 남아 있는게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한답니다

 

 

 

 

"각석" 바위 자체가 윗부분이 15도정도 경사가 져 있어서 비가와도 비를 맞지 않아

오랫동안 보존이 용이했을 거라고 한다

 

물론 그런것까지 생각해서 기록을 남겼을것이란다

 

 

 

 

 

 

이곳은 대곡천으로

물이 흘러서 오른쪽 "각석"앞을 지나

다음 방문 코스인 "반구대"까지 흘러가게 되어 있읍니다

 

 

 

 

문화 해설사님이 가리키는 곳의 움푹 패인곳들이 모두 "공룡 발자국"들이다

초식 공룡, 육식공룡, 잡식공룡 모두 발자국 모양새가 달랐다

 

 

 

 

 

발톱이 세개로 "잡식 공룡 발자국 화석"이다

 

 

 

 

 

 

 

 

 

이곳에 앉아 그 옛날을 상상해 보는것도 멋진 나들이가 될것 같았는데

도착한 시간이 오후 늦은 시간이어서

 

다음 코스인 "반구대"도 해지기 전에 보아야 한다고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천전리 각석에서 출발하여 반구대 암각화까지 숲길 탐방로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을것 같았다

 

 

 

 

 

 

 

 

 

 

 

▼  이곳부터는 "반구대" 의 "암각화" 일대이다

 

 

 

반구대 암각화 가는길의 초입으로

정자가 있는 저곳이 정몽주가 머물렀던 곳으로 "가묘"가 있었다고 한다

 

그 옆의 산세가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 하여 "반구대(반?  거북구)"라고 한단다 

("태종대" 처럼 그리 부르는 이름이 "반구대"라고 한다)

 

 

 

 

이곳의 반구대를 휘돌아 가는 대곡천의 모습이 멋드러진 풍경 임에도 불구하고

잠시라도 감상할 시간도 안주고 특별한 설명도 없이

 

"암각화"보러 간다고 다들 발걸음이 바쁘니

제대로 사진에 담지를 못해 많이 아쉬웠다

 

나는 이곳이 훨씬 기억에 남는 곳으로

 

저 정자를 가려면 어찌 갔을꼬?

배로 건너 갔을까?

옛날 모습은 어땠을까?

 

내심 혼자 고심을 해 보았다

 

 

 

 

 

 

 

 

 

 

 

암각화" 보러 가는 길이다

 

 

 

 

 

"암각화"를 보러갈 수 있는 진입로이다

 

 

 

 

 

 

 

 

 

 

 

 

 

 

 

 

 

 

 

 

 

국보 제 285호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설명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파란색 그림은 바다의 고래잡이 장면이고

빨간색 그림은 육지의 생활들이다

 

고래 종류도 특징을 잘 잡아서 정확하게 세밀하게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설사님의 해설도 재미있었다

 

 

 

 

 

이 개울(?)이 대곡천으로  저 바위에 옛날 생활상들이 새겨진 것이다

거리가 있어서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우나 지금 위치에 보호대와 함께 "망원경"을 설치 해놓아서

들여다 보니 일부분이 확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