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5일 ~ 12월 31일
천안 호두마을에서 있었던 "1주일 집중수행"에 다녀오다
간만에 수행처에 다녀왔다
처음엔 집을 비워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올해(2015년) 처음으로 아이들과 모두 한지붕 아래에서 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나름 아이들에게 봉사(?)해야 할 의무감(스스로 선택한)도 있었고
현재로선 경제활동을 접은 상태여서 이것저것 생각하니 부담이 되어서 많이 속으로 재고 망설이다
겨우 말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허락 받은게 3일이었다
전체 상황을 모두 이야기 하고 서로가 공감되는 범위내에서 이행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혼자 짐작하고 결정해서 행해오던 습으로 인해
이번에도 미리 결정을 해서 3일(최대한 배려 한다고 한 것)만 휴가를 받은 것이었다
처음 아이들에게 말을 했을때 너무도 시원하게 흔쾌히 허락을 해주어서
괸스리 혼자 고민했나 싶은게 후회 될 정도로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가끔씩 갈증을 느끼기도 해서
먼저 다니던 "자비선사"에도 가 보지만 여전히 수강료 부담이 있어서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 공부할 곳은 많지만 마음만 갖고는 계속해서 할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담마야나 선원"을 찾았을때의 안도감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도심에 있는 수행처로서는 보기 드물게 "자율보시금"으로 운영이 된다고 하니
현재의 경제활동을 접은 나로선 마음의 부담이 적어서 선뜻 마음이 다가 선것도 한몫을 했다
그렇게해서 서울 담마야나 선원으로 나간지 겨우 3번 참석을 했는데 가자마자 2015년 종강을 한다니
이 아쉬움을 어찌 내년까지 참고 있나 했었는데
마침 천안에 있는 "호두마을"에서
"2015년 마지막 1주일간 집중수행"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석을 한것이다
그동안은 그곳 호두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아신 빤딧짜 스님"의 수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번기회가 마지막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인지 많은 수행자들이 참석을 한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이번 수행기간에도 자율보시로 진행되는건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저렴하다고 느껴지면 그 다음엔 앞뒤 생각을 안하는게 다반사이다 보니
1일 3만원으로 돈보다도 여러날을, 그것도 연말에 집을 비워야 하는 이유로 미리 3일만 시간을 준비한 것이었다
1주일간의 수행한 내용은 생략하고,
처음 3일 참석할려던 계획이 1주일로 늘어난 계기와
수행처로 출발하던날 있었던 일이며 그외 몇가지 사건(?)들을 적어볼까 한다^^
출발하는 날 아침
계획했던 것 보다 약간 늦어서 집에서 부터 서두르는 경향이 있었다
서울역으로 가기위해 서둘러서 전철을 탈려고 개찰하고 막 들어섰는데
전철에서 내려서 올라오신 아주머니 한분이 내게 "미아역"이 어디냐고 물으셨다
물음과 동시에 의심한톨 없이
(출발하면서 계획보다 조금 늦은듯해서 서두르는 상황이었기에 두번다시 생각도 없이)
이곳에서 나가서 저쪽 건너편으로 가서 다시 한정거장 되돌아 가면 된다고 하면서
역무원에게 부탁을 해서 건너편으로 안내를 했다
그러니까 그 아주머니가 조금 망설이는 몸짓으로 조금 석연찮은 듯 그쪽으로 내려가시는 것을 보고는,
전철을 타기위해 돌아서는데 "앗차!" 싶었다
내가 착각을 했음을 그때서야 알았다
평소의 습관대로 한정거장 전인 미아사거리역에 서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는 그분을 그렇게 반대편으로 밀어(?) 넣은 것이었다
그래서 얼른 다시 역무원께 부탁을 해서 "내가 어떤 아주머니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 드려서 그런다"고 부탁하고는
전철 개찰구 문을 열어주셔서(건너편 문도 열어주심) 건너편으로 내려가니
그 아주머니가 보이지를 않았다
그때 전철 한대가 와서 막 떠나고 있었고...
순간 생각하기를 "아 벌써 전철을 타셨구나"
"어쩔 수 었다"
그러면서 내 갈길을 가기 위해 건너와서 전철 승강장으로 내려 오면서
그래도 혹시나 하고 건너편으로 눈길이 가길래 유심히 살펴보니
아니 아뿔사!
그 아주머니가 안가고 거기에 계시는 거였다
순간,
"저분이 전생에 내게 빚을 졌나?"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이를 어쩌나?
다시 가서 일러주고 와야하나?
그러기엔 내가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
다시 건너가려면 또 역무원에게 말을 해야하는데
다시 건너가다가 또 전철이 오면 어쩌지?
그냥 저 아주머니가 힘은 들겠지만 한정거장 더 갔다가 잘 돌아 왔으면 좋겠는데
나라면 그리 할텐데..
그렇게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그 아주머니가 날 바라보기만을 기다렸다
눈앞에 보이긴 해도 스크린이 가려서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을 것이기에
속으로 제발 바라보기만을 원하며 (두손을 가슴에 모아쥐고) 기다렸다
한참 만에야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위로 나오라고 손짓으로 내뜻을 전했다
위로 나오길 바라면서 연신 팔을 휘저으니까
내 몸동작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옆에 서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고는
머리를 갸웃거리곤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세사람에게 물어보고는 연신 엉거주춤(?) 궁금증이 안 풀렸는지 올라 오지를 않고 그러고 있다
대답해 주던 젊은 사람들도 그저 별 반응없이 적극적이지가 않은 것이 나로서 안타깝기만 했다
나를 한번만 더 쳐다 봐 주면 좋겠단 생각을 하는 순간
그때 그쪽편의 전철이 들어왔다
이미 내 앞의 시야를 가려서 그 아주머니와는 더이상 대화를 할 수도 없었다
그때서야 나도 포기를 했다
그리곤 "어쩔 수 없다. 그냥 한정거장 갔다가 잘 돌아오기만을..."
"나라면 편안하게 갔다 올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내 발길을 전철 맨 앞칸으로 재촉을 했다
그리곤 잊었었다
수행중에 "초심자 그룹 인터뷰"시간에 문뜩 떠올라서 스님께 여쭈어 봤다
아주 내려 놓을수 있으면 좋겠지만
문득문득 떠올를 땐 어찌 해야 하는지요?
"아주 내려 놓을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저 바라만 보라"고
"사띠"를 하면서
내 마음이 다른 생각으로 흘러 가기전에
"사띠"로서
"생각" "생각"하면서....
그러면 그 생각이 망상을 피우기 전에 사라질 것이라고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그 아주머니가 나의 스승(메세지를 준듯)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이론이 아닌 실천수행으로 지금부터 또다시 시작을 한다
예전에 경험했던 그 어떤 현상들은 한갓 지나가는 과정일뿐
지금 이순간에 머물러 있어야 함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3일 지나고
3일을 3년같이 지낸 그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좋아서
집으로 가지 않고 계속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함께한 전랑보살님께 말을했다
그랬더니 극구 권하기를 돈 때문이라면 빌려주겠다고
평생 천천히 갚아도 된다며 더 있기를 권했다
아이들에게 전화하라고 하면서...
깊이 생각한 결과 나의 욕망(?)을 내려 놓기로 결정을 했다
일요일 오후 2시 법문이 끝나고는 짐을 싸들고 집으로 향했다
정말 돌아오기가 싫었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에 후회를 할 지라도 그 순간은 그렇게 하는게 옳다고 믿었다
돌아오면서 천안역에서 아이들에게 줄 호두과자도 샀다
역시 주부의 본분을 잊을 수는 없는지 "호두마을"을 나서자 마자 심한 허기를 느끼며
저녁찬거리 걱정에 3일간의 일은 까마득히 잊고 부리나케 돌아와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을 앉히고 저녁 준비를 했다
이미 아이들은 엄마가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올때까지 밥도 안하고 와서 밥해줄거라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작스레 찬거리가 준비 되지 않아서 라면을 끊여서 밥상에 둘러 앉았는데
둘째가 밥상에 앉으며 반가운 기색으로 묻는다
"자, 3일동안 있었던 일좀 이야기 해봐"
그때 핸드폰으로 게임을 켜놓고 손에 들고선 밥상에 앉아서 내게 말을 걸은 것이었다
내 대답이,
"지금 너처럼 이렇게 밥상에 앉아서 핸드폰 들고 있으면 어찌 내가 말을 계속할 수가 있겠어
말을 시켰으면 말을 들을 자세가 되던지, 아니면 그냥 밥을 먹던지 둘중에 하나를 해야하지 않을까"
"한번에 한가지씩,
밥먹을땐 밥먹고 게임할땐 게임하고...
그런걸 배우려고 갔었지"
"그말은 맞네"
그렇게 응대를 하니 나도 모르게
"그런데 지금 정말 오기 싫은걸 왔다"
"친구가 돈까지 빌려주겠다며 더 있다 가라고
자식들에게 더 있다 가겠다고 전화해보라고 하는데도 그냥 왔다"
"원래 3일만 하는게 아니었어?
원래 계획은 몇일이었는데?"
"원래는 1주일 하는 프로그램인데 너희들 생각해서 3일만 다녀 오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가서 듣고 보니
"정말 지금 아니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정말 오기 싫은걸 왔지"
"너희들과 약속을 했기때문에"
"그럴것 같았으면 이렇게 오지를 말고 전화 1통이면 될것을,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그러며 핀찬이다
"예전에 내가 경제권을 쥐고 있었을때는 너희들 눈치를 안보고 살았지만
솔직히 지금은 너희들 눈치를 보게 되더라
그래서 말을 못했었다"
"왜 눈치를 보며 살아?"
"그게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거꾸로 부모가 자식에게 경제권을 받는다는건 부담이 되더라
그렇다고 예전에 할머니 할아버지께 용돈 드리는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나는 내가 자식에게 받을려니까 자연 그렇게 느껴지더라구"
"그래서 길게 있을 생각을 못했지, 돈 때문에라도"
나도 모르게 그동안 답답했던 심정을 술술 털어놓고 있었다
갑자기 두 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는 말을 잊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지금 빨리 밥만 먹고 다시 가라"고 한다
"설겆이할 생각도 말고 밥만 먹고 그대로 가방들고 가라고...
아직 시간이 늦지 않았으니 기차는 있을 것이다"라고
그때 시간이 저녁 8시쯤이었던것 같다
정말 불나게 라면 몇젖가락 먹고는 오자마자 가방에서 꺼내 놓았던 도구들을 가방에 도로 챙겨넣으며
다시 며칠을 더 지낼 것을 생각하니 여분 옷가지가 없었던걸 기억하고 속옷만 갈아입고,
머리 감을것도 생각해서 휴대용 샴푸도 하나 넣고는
머리속으로 이것저것 생각을 하면서 문을 나설 때쯤
둘째가 방으로 가더니 돈을 챙겨들고 나와서는 쓱 내밀며
"이거 갖고 가서 택시타고 가라"고
그러면서 문밖까지 따라 나오면서 하는 말이
"우리 이렇게 힘들게 살지 말자 앞으로는 할말 있으면 하고,
할 수 있으면 하면서 살아야지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는데..."
할머니를 보니까 해 드릴 능력도 많지 않지만, 너무 연로하셔서 하고 싶은 대로 못하시지만
엄마는 아직까지는 건강하고 두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을때 하고 싶은것도 해야지"
그러면서 저만치 따라 나오며 배웅을 해주었다
뜨거워지는 가슴을 안고 다시 호두마을로 향하는 내 가슴은 환희심으로 가득했다
'적어도 내가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서울역까지 오면서
천안역에서 내려서 어떻게 할것인지
호두마을에 도착하면 모두들 잠들고 깜깜할 텐데 다음날 아침까지 어떻게 잠자리를 찾을것인지 등등...
머리속으로 한번 그려 보고는 출발을 했다
두려움이나 걱정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뿌듯하고
다음날 아침 "새벽예불과 법문"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것 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또한 친구(전랑보살)에게 얼굴을 다시 보여줄 수 있는 것과
그리고 잠시 잠깐 알게된 다른 보살이 놀랄걸 생각하면서 ... ㅎ ㅎ ㅎ
천안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면서 "호두마을까지 요금이 얼마인가요" 물으니 메타요금으로 받는다고 타라고 한다
택시기사가 가는길을 모른다고 하면서 주소를 묻는다
내말이 "한번도 안 가보셨어요?" 하면서 "한참 찾아야 되는데..."
다행이 적어 둔게 있어서 불러주는데 네비게이션에 찍고서 출발을 하면 좋겠지만,
가면서~ 찍으면서 ~
어찌나 서두르는지 보다못해 두번이나 권했다
제대로 주소 찍고서 출발을 하시라고
그래도 줄곧 달리면서 찍으려하기에 순간 나도 모르게 기사분을 향해 언성을 높이는데
그순간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추어 서게 되었다
그렇게 교차로 지점에서 부딫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무릎을 앞좌석에 찧고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참으며
항의조로 "그렇게 주소를 찍고 출발하시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무릎이 너무 아파죽겠다"고 하니 그때서야 차분해진 듯했다
호두마을 입구에 들어서서 이 마을에 "수행처"가 있어서 오는 중이라고 일러 주었다
기사님 역시 세간의 눈으로는 한낮 "기도처"로 받아 들이는 것 같아서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해주었다
첫째날 들어올 때에도 버스에서 어느 남자분의 말투나 표정이 그랬었기 때문에
이 기사님의 질문에는 그냥 지나치려다 일러준 것이다
그 다음날 그런일이 있었던 것을 이야기 하며 "정말 불보살님이 계셔서 사고 직전에 지켜 줬나보다" 했더니,
어느날엔가 "빤딧짜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불보살이 아니고 "사띠"가 지켜준 것"이라고 하시더란 말을 전해주었다
역시 "사띠"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된것이다
그렇게 다시 들어가서는 아무일 없었던듯 합류해서
설법도 듣고 수행도 다시 시작을 하였다
지난(이글을 쓰는 이 시점으론 벌써) 연말에 있었던 "1주일 집중수행" 시간은
그동안 해온 공부가 알게 모르게 구멍 뚫린점도 많아서 이 기회에 보완하는 계기도 되었고
하다 말다 한 내 공부이긴 하지만, 그런 중에도 많은 갈증과
여러번 나타난 현상(그냥 지켜보라고는 배웠지만)들에 대해서 물어보고 점검할 기회를 갖지 못해서
마음 한켠에 미루어 두었던 것들까지
알아듣기 쉽게
반복 반복하면서-스님의 한국어 발음상 반복(?), 부처님의 말씀으로(빨리어)도 - 되새김 되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신 법문과,
개인 인터뷰를 통해
나의 궁금증을 모두 해소를 하게 되어 더없이 만족스러웠고,
무엇보다도 한번더 초석을 다지는 기회가 되어서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또다시 새로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 마음깊이 감사드린다
"아신 빤딧짜" 스님께
그리고 내 도반이 되어주면 좋겠다 싶은 "전 랑 보살"께
그리고 또한 내 아이들에게도
더 크게는 법을 펼칠 수 있도록 수행처를 마련해 놓은 많은 분들께도
내가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거나
나를 있게한 모든이들에게도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 ()
사~두 사~두 사~두
2015년을 그렇게 마무리를 했다^^
광덕산 자락에 자리 잡은 호두마을 수행처
버스에서 내려서 동네 골목길로 접어 들면서...
이 동네를 "만덕골"이라고 한다
동네 어귀에서는 수행처가 보이지를 않으니
혹시나 싶어서 시설물(처음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을 찍어 보았다
역시 호두나무골 답게 온 동네가 묵은 호두나무들이 즐비했다
이렇게 예쁜 집들도 많았다
"복분자 밭"도 지나고
멀리서 바라본 "호두마을 수행처"
도로에서 많이 걸어 들어와야 비로서 수행처가 눈에 들어온다
호두마을 찾아 가던날 모습들!
수행중 첫날밤을 자고 났더니 밤에 소리없이 눈이 내렸다 (12월 26일)
"새벽 법문이 끝나고"
경행처에도
주변에 지어진 수행처로 분양중이라고 한다
호두마을에서의 마지막 수행이이서 인지는 몰라도
저곳까지 숙소로 사용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하였다
아침공양후 경행중
호두마을 수행처 뒷산길로 경행 다녀오며..
이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개인사찰이 나오는데
미안하기는 하지만 경행 다녀오기에는 거리나 분위기가 딱 좋았다
광덕사 대웅전과 다보탑(국보?)
수행처에서 버스로 몇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광덕사의 호두나무(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여온 호두나무라고 한다)
12월 29일 아침 해뜨는 모습
숙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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