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말라야 라운딩

히말라야 라운딩 첫날

강보 (gangbo) 2014. 9. 24. 00:30

 

 

 

 

피다 만 바나나 꽃!

 

"포카라"도착 사흘만에 "히말라야 라운딩"을 출발 하였읍니다

 

떠나기전 필요없는 짐을 덜어내어 게스트하우스에 맡기고, 비상식량으로 비스켓과 야크치즈 한덩이 제일작은

꿀한병과 당장 먹을 식빵을 더 사서 넣고, 추위를 대비하여 수통도 하나 사고. 우비도 사고...

그외 스틱은 주인장께 빌리고 그럭저럭 준비는 되었는데 짐을 지어 보니까

무게가 장난이 아닌게 아무리 꺼내어 다시 살펴봐도 덜어낼게 없는데 왜 이리 무거운건지

도저히 지고 갈 자신이 없었읍니다

 

얼마만에 하는 산행인지, 한동안 베낭을 지어 보질 않아 어깨에 눌리는 무게감이 만만치 않았읍니다

이걸 메고 보름동안 걷다가 혹여라도 중간에 돌아올 수도 있다는걸 생각하니

나중에 억울해 하지 않으려면 단단히 준비를 하는게 상책인듯 싶어

"포터"를 써야겠다는 결론이 내려졌읍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귀동냥 끝에 동행할 사람을 찾는이가 그시각에 "산촌다람쥐"에 있다고 해서 그를 만나러 갔읍니다

가서보니 한국인 청년이 포터를 같이 쓰면 좋고, 정 없으면 혼자라도 쓸 생각이라고 했읍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포터"와 미팅후, 다다음날 출발을 할 예정이라고 했읍니다

 

하루를 더 지연해야 하는게 별로 달갑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함께 미팅을 하기로 약속을 해놓고 준비를 하러 다녔읍니다

 

다음날 만나기로 한 시간에 그청년의 숙소로 갔더니, 내가 도착도 하기전 찻집에서 벌써 미팅이 마무리 단계에 있었고, 미팅 장소에는 여러명이 있어서 조금 의아해 했더니

 

본래 동행하기로 한 "포터"가 안가고, 다른사람을 소개해서 "25살의 젊은 청년이 포터로 동행"하기로 했다고

이미 결정을 다 본 상태였읍니다

순간, 이건 아닌데 싶어 반기를 드니, 함께하기로 한 청년이 나중에 둘이 이야기 하기로 하자며

미팅을 끝내자고 하는 겁니다

딴에 자기는 잘한다고 가격도 깍고, 이것 저것 구두의 약속을 해 놓긴 했으나

내가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포터가 너무 젊어 경험이 있을까 싶어 물어보니 "라이센스"가 있다며

걱정말라고  하는 겁니다

그 자격증이란게 경험과 같을 순 없다고 반박을 해도 함께할 청년이 가로막고 미팅을 끝내고 헤어졌읍니다

 

"포터"니까 그야말로 최종적으론 짐만 들어주면 되기도 하겠지만 이왕지사 함께하는 거라면

경험이 풍부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처음 동행하기로 한 포터가 쏙 빠지고 다른 사람을 소개했다는게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 졌고,

 

그래서 "동행"을 할 것인지 고민을 해봐야 겠다고 말을 건네고 헤어졌읍니다

 

함께 동행을 할것인지, 따로 출발을 할것인지 선택할 길 만 남았읍니다

 

하루를 소비한 마당에 새로운 계획을 세우자면 또 얼마의 시간과 여비를 허비해야 하는지 속이 갑갑했읍니다

내게 가장 큰 문제점이 "여비"가 넉넉치 않다는 것인데 하루씩 지체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읍니다 

 

그때가 시즌 조금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동행을 찾는게 쉽지가 않아 보였읍니다

정말 많은 고민 끝에 함께 동행하기로 하였읍니다

 

"카투만두"에서 출발할 때에는 혼자 하기로 결심을 했었는데, 어쩔 수 없이 포터를 쓰고라도

최종 목적인 "라운딩을 하고 싶다"였읍니다

 

 

그렇게 해서 사흘만에, 한국청년과 함께 포터 한사람을 공유하기로 하고

"히말라야 라운딩"에 돌입을 하였읍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첫날"

 

"포카라"에서 아침 6시30분 버스로 "베시사하르"로 출발

"베시사하르"에서 "쿠디"까지 버스로 이동

 

한가지,

"베시사하르"에 도착을 하여 첫 관문인 "퍼밋"을 마치고,

"쿠디"로 가는 버스를 올라타고 기다리는데, 밖에서 7~8살 되어 보이는 남아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뭐라고 뭐라고 현지 사람들에게 대들고 있었읍니다

한 두번 그러는게 아니라 버스 출발할 때까지 여러번 그러니까 자연 시선이 그리로 갈 수 밖에 없었읍니다

 

가만 보아하니 버스에 올라 탔다가는 삼삼오오 내려서 택시를 합승해서 출발을 하니

자꾸만 버스 손님이 줄어드는게 그게 안타까워, 택시 합승에 소개하는 사람보고 손님 뺏어가지 말라고

난리를 부리는 거라고 합니다

우리가 탄 버스가 출발을 하는데 보아하니 "그 꼬마가" 차장이었읍니다

 

아직은 학교갈 나이 이기도 하거니와, 차장일을 하고 있는게 너무 어려서 안타깝기 그지 없었읍니다

그런데 얼마나 삶에 찌들었는지 고함을 지를 때와 말을 할때 보면 정말 "악다구니"만 남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읍니다

출발을 하고나서 현지인들이 타고 내릴때마다 차비를 걷는데도 어찌나 날렵하고 재간꾼처럼 구는지

그야말로 그 아이에게서 눈이 떨어지지가 않았읍니다

 

달리던 버스가 잠시 정차하고 손님이 내려서 차비를 받는데 

할머니들은 그제서야 치마를 쳐들고 속바지 주머니에서 꺼내려면 한참 시간이 걸리니까

돈을 꺼낼때까지 앞에서 온갖 몸짓을 해가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이손님 저손님 왔다 갔다 하며 차비를 받아 내는데 반 도사가 되어 있었읍니다

내 눈에는 그런 그 아이의 행동들이 측은하기 이를데 없었읍니다

 

그러다 거의 다와 갈 즈음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도 차비를 받으러 버스 통로를 왔다갔다 하는데

제일 뒤에 앉았있던 외국인 여행자 한분이 버스요금이 얼마냐고 물으니 "300루삐"라고 합니다

현지인은 "60루삐(그렇게 기억함)"인데 왜 외국인에게만 그리 많이 받느냐고,

너무 과하게 받으니 부당하다고 주지를 않았읍니다

 

결국 어린 차장과 외국인 손냄과의 실갱이가 벌어지며

다른 "외국인 여행객"들도 합세를 하여 버스비를 안내고 적게 받으라고 하고

차장은 연신 "No" 를 외치며 고함을 질러대고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었읍니다

 

보아하니 내가 동행한 청년은 자기몫으로 300루삐와 포터의 몫으로60루삐(나중에 나와 계산할 요량)를 지불했는데 그걸 다른 옆에 있던 여행객이 그걸 보면서 시작이 되었던것 같았읍니다

 

계속되는 실갱이 속에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을 하였고 

모두 버스에서 내렸읍니다

차장은 더욱 안달이나서 자기의 아지트(?)에 오니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는 겁니다

그래도 선뜩 차비들을 낼 생각을 안하니 사무실로 뛰어가 이르는 것 같았읍니다

 

그러나 모두들 한 생각인것이

이 아이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너무나 어린나이에 돈에 연연해 하는게 안타까워 바로잡아 주고 싶다는 것이,

그날 그 버스에 탔던 "외국인 여행객"들의 한결 같은 생각이었읍니다

줄땐 주더라도 이 아이가 겸손하게, 또는 다른 태도로 "버스비"외의 "써비스 요금(부당요금?)"을 요구했으면

하는걸 가르쳐 주고 싶어 하는것 같았읍니다

 

다들 짐만 꾸리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방방 뛰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내가 다가 갔읍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낯추어 그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얼굴을 바라보며

 

"내 눈을 보라"고

두손은 내손에 잡힌채로 눈은 뒤를 향해 있으면서 보지를 못합니다

다시 "내 눈을 보라"고

세번쯤 말을 했을때 그때서야 나와 눈을 마주칩니다

 

그리곤 내가 지긋이 바라보면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눈으로" 그 아이에게 말을 했읍니다 

"너무 돈에 목메이지 말아라"

"넌 아직 어린데 어쩌다 이리 되었니?"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더 힘들텐데"

이 아이의 앞날이 어찌될까 많은 생각이 스치면서

한참을 그렇게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있었읍니다

 

그리곤 살그머니 앞으로 당겨서 머리를 감싸 안고는

속으로 빌었읍니다

"이 어린 영혼을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사"하고

엄마의 마음으로 간절하게 빌었읍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의 경직됐던 몸이, 사나웠던 눈이 부드러워 짐을 느낄 수가 있었읍니다

그리곤 그 아이를 놔 주었읍니다

 

그때서야 다들 차비를 내고 출발을 서두릅니다

물론 나도 차비를 주었읍니다

그러나 나는 300루삐를 다 주지는 않고 조금 덜 주면서 "OK" 그러니까 그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서는

60루삐는 따로 쥐고 나머지는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겁니다

 

바로 이거였읍니다

이 아이에게 그걸 가르쳐 주고 싶었읍니다

 

다 받아들고는 사무실로(?) 뛰어가더니 어떤 어른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는 

다시 우리들 앞으로 달려 와서는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읍니다

 

 

 

그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고단한 삶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환경을 벗어나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비록 얼굴엔 땟국물이 질질 흐르고, 목에서는 터져라고 고함을 지를지언정 가슴 한켠에선

가끔씩이라도 겸손한 마음과 따스한 마음이 솟아 나는 차장(어른)으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처음 만나는 철다리로 어찌나 길고 철렁대는지 손을 놓고 걸을 수가 없었읍니다

 

 

 

 

 

"볼블레"까지 가는 마을에서 만난 母子입니다

 

"네팔"사람들은 대개가 순박해 보였읍니다

여기만 해도 산골 오지에 가까우니 더욱 낯설어하고 경계하는 눈치였읍니다 ^^

 

 

 

 

 

함께 걷는 네사람!

왼쪽 두 사람도 한국인으로 포터없이 출발을 하였고,

 

왼쪽 두사람이 나와 동행하는 일행입니다

 

 

 

 

 

 

 

 

 

하나 하나가 신비롭고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하나되어 삶을 이어가는 모습들에서 평온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았읍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 모두 함께 걸어갑니다

장날 시골에서 장보러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풍경입니다 ^^

 

 

 

 

이미 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산속 깊숙히 들어 왔읍니다

 

 

 

 

첫날을 묵을 "나디(930M)"에 도착을 하였읍니다

숙소를 정하고 동네 한바퀴를 둘러봅니다

 

어느 가게의 풍경입니다

쓰던 물건을 "기념품"으로 파는듯 보입니다

 

 

 

 

야크의 목에 달았을 "방울" 인가봅니다

 

 

 

 

 

 

 

 

 

"나디" 에서 만난 소녀 !

사진을 찍어 보여 주면서 "매우 예쁘다"고 말해 주었읍니다

그랬더니 너무도 쑥쓰러워 하며, 자기 사진을 보고 신기해 합니다

그리곤 서너장을 더 찍어서 보여 주었읍니다

 

이럴때 사진을 건네 줄 수 없다는게 제일 안타까웠읍니다

 

 

 

 

 

 

함께 동행할 젊은 청년들입니다

왼쪽은 포카라의 같은 게스트하우에서 묶었던 이군,  오른쪽은 포터를 함께 고용한 젊은청년 김군 입니다

 

그런데 둘의 표정이 왜 저럴까요?

벌써 라이벌 의식이 살짝 싹튼 느낌입니다

 

포터없이 출발한 두 사람은 다른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잡았고,

나와 오른쪽 김군은 또 다른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정하고

 

서로 마을 구경하다 이곳에서 잠시 마주쳐서 이야기 중이었읍니다

조금 일찍 도착을 했기 때문에 동네가 작기도 하지만 이곳 저곳 함께 둘러 보았읍니다

 

 

 

 

 

꽃 부터가 이국적입니다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많이 보아온  꽃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동네라고 해봐야 한바퀴 도는데 3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로,

높다란 산속에 파묻혀, 납작 업드린 듯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저 자연에 기대어 사는 소박한 모습들이 얼굴에 쓰여 있듯이 온 주위가 평온해 보였읍니다

 

 

이미 해는 져서 사방이 고요 하기만 한데

나는 하루만에 너무 깊숙히 들어와 버려서

마음은 알 수 없는 "오묘함"으로 가득합니다

 

 

 

 

 

 

주변이 큰 공사가 이루어 지고 있었읍니다

해 지기전 바라보이는 "둥근 동산(동산이라고 하기엔?)"은 어쩌자고 저리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일까요?

 

 

 

 

 

 

 

 

 

트래커들이 맞이 하는 첫날밤 레스토랑에서의 풍경입니다

 

이날따라 레스토랑 앞에서는

10월말 ~ 11월초까지는 "디왈리 축제"라고 "부와 성공의 여신 락슈미를 환영"하는 뜻으로

특별한 집들을 골라서(포카라에서 들었음),

여자 아이들이 그룹으로 몰려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읍니다

 

마침 이곳에서 구경하고 있던 외국인 한분이,

몸을 흔들어 장단 맞춰가며 여기 저기 돈을 꼽아 놓으며 기분을 내주어

아이들의 축제는 성공리에 끝이 납니다

 

우리도 마침 숙소가 바로 옆이어서 함께 구경을 할 수 있었읍니다

그런데 야간이어서 후레쉬를 쓰면 흥이 깨질까 그냥 찍어 보았더니 춤추는 소녀들의 사진은 건질게 없네요^^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묶는 다른 여행객들의 "포터"들입니다

 

전형적인 현주민들로 적당한 경력과 연륜이 있어 보이는게 부러웠읍니다